1. '은'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탄생
아르헨티나(AREGENTINA)는 1816년 에스파냐(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본래의 지역명이었던 '라플라타' 대신에 '아르헨티나'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라플라타는 '은'을 의미하는 에스파냐어이며, 아르헨티나는 '은'을 의미하는 라틴어입니다. 아르헨티나는 독립과 함께 '은'을 의미하는 에스파냐어 '라플라타' 대신에 라틴어 '아르헨티나'를 국호를 쓰기로 한 것입니다. 15세기 후반 신항로의 개척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에르만 '꼬르떼스'(herman Cortes)와 '프란시스코 삐사로'(Francisco Pizaro)는 우월한 병력을 이용하여 '아스떼까' 제국과 '잉까' 제국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들에 의해 옮겨진 천연두와 홍역 등의 전염병 확산은 면역력이 없었던 원주민들의 급격한 인구 감소를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가혹한 수탈과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게 됩니다. 18세기에 이르면 각지에서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메스티소, 뮬라토, 흑인 등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가혹한 식민 지배와 착취에 불만을 가지고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이 혼란해지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분위기는 활기를 띠게 됩니다.
미국도 유럽의 아메리카 간섭을 배제하는 '먼로 선언'을 발표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운동을 주도하였던 이들은 '크리오요'라고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크리오요'는 에스파냐인 부모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이들을 의미합니다. 본국(에스파냐) 출신의 '페닌술라르'와 비교하여 정치적, 경제적 차별을 느끼던 이들이었습니다.
크리오요 주도의 독립 운동에 에스파냐와 경쟁하고 있었던 영국의 지원이 더해지게 됩니다. 크리오요 출신의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라틴 아메리카 북부 지역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을 에스파냐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시켰고, '산 마르띤'(1778~1850)은 라틴아메리카 남부 지역인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시킨 인물입니다. '해방자'로 불린 시몬 볼리바르는 1819년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로 이루어진 콜롬비아 공화국을 수립하고 대통령에 오르게 됩니다. '라틴 아메리카 대통합'을 의미하는 '볼리바리안 혁명'은 볼리바르의 정신을 바탕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통합하자는 것으로,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운동입니다. 본국 에스파냐의 무역 제한 조치에 대한 저항 운동을 통해 식민지 라플라타(아르헨티나)는 1816년 7월 9일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아르헨티나는 중앙집권주의자들과 연방주의자들의 내분이 계속되었고, 1852년이 되어서야 후스토 호세 데 우르키사가 아르헨티나의 초대 대통령에 오르게 됩니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초 제1차-제2차 세계 대전의 특수를 배경으로 세계 5대 부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군사 쿠데타와 함께 인플레이션과 경제불황의 어두운 그늘에 허덕이는 모습이 현재의 아르헨티나의 모습입니다. 페닌술라르(본국 스페인인)와 크리오요(식민지 스페인인)의 차별에 저항하여 독립을 이루었으나, 그 열매는 일부 부유층에게만 집중되며 새로운 차별을 만들어 낸 나라가 아르헨티나입니다.
2.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는 '좋은 공기'라는 뜻으로, 유럽보다 유럽다운 도시, 남미의 파리를 꿈꾸었던 도시입니다. 1880년대 이후 에스파냐,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의 가난한 이민자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몰려들었습니다.
20세기초 100만명에 이르는 대도시를 이룬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보다 유럽다운 도시, 남미의 파리를 꿈꾸며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해 갔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도시는 세계 역사 여행에서 몇 가지 의미를 지니는 곳입니다.
첫째, 19세기 남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영웅 '산 마르띤'의 도시입니다. 산 마르띤(1778~1850)은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를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해방시킨 인물입니다.
둘째, 20세기 혁명 운동의 전설 '체 게바라'의 도시입니다. 체 게바라(1928~1967)는 프랑스 68 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되며 혁명 운동의 전설이 된 인물입니다.
셋째, 뮤지컬(영화) '에바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에바 페론'의 도시입니다.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된 대통령 '후안 페론'의 아내 '에바 두아르테'(에비타)는 여성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함으로 가난한 서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됩니다.
넷째, 아르헨티나 최초의 항구가 위치한 '라 보까' 지역은 땅고(탱고)가 출현한 도시입니다. 라 보까 지역의 심장인 '까미니또' 거리 카페(가게)마다 땅고를 추는 남녀를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만화 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무대가 되는 도시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소년 마르코가 이탈리아 제노바를 떠나 엄마를 찾아 나선 도시였습니다.
3. '산 마르띤 광장'에 세워진 산 마르띤 동상
산 마르띤 광장(Plaza San Martin)에는 아르헨티나를 에스파냐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시킨 영웅 '산 마르띤'(1778~1850)의 동상이 광장 한 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기마 부대를 이끌고 라틴 아메리카 행방 전선을 앞장서서 지휘하던 산 마르틴의 늠름한 기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광장 주변에는 에스파냐 식민 통치 시대의 옛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4. 산 마르띤의 유해가 안치된 대성당(카테트랄)
5월 광장 오른편에 위치한 대성당(카테트랄, Catedral Metropolitana)은 남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산 마르띤의 유해가 안치된 곳입니다. 산 마르띤의 활약으로 독립을 얻은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의 성녀들이 그의 유해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성당의 12개의 기둥은 예수 그리스도의 12 사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5. 20세기 혁명 운동의 전설 '체 게바라'
20세기 혁명 운동의 전설, 프랑스 68 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1928~1967)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모터 사이클로 남미 대륙을 여행하며 빈부격차로 인해 힘겨워하는 빈민들의 일상을 경험하며 혁명 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는 이러한 체 게바라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성공하고 볼리비아 혁명에 참여하였으나,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독재 정권) 군대에 의해 사살되게 됩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그를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6. 레꼴레따 묘지 : 에비타(에바 페론)
레꼴레따는 '남미의 파리'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도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유럽스타일의 거리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레꼴레따 공동 묘지(Cementerio de la Recoleta)는 본래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 대통령 등의 무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유층들이 이 무덤 부지를 사들이기 시작하여 지금은 부자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1기에 5억원이 넘는다고 하며, 고급 주택가를 연상시키는 대리석 건물들로 그들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에 사생아로 태어난 여배우로 가난한 자를 위한 정책에 앞장섰던 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의 무덤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성녀로 추앙을, 부유한 자에게는 거리의 몸 파는 여자로 취급받은 인물이 에비타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에비타'의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떠올리게 하는 곳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