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위화도 회군에 대해서

by 에쉬브라운즈 2021. 9. 30.

고려 말기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왜구의 침입과 위화도 회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이성계라는 인물을 내포하고 있는데요. 게다가 4불가론 이라는 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중요한 상식 중 하나랍니다. 그렇다면 왜 이성계는 고려 조정의 명령인 요동정벌을 뒤로하고 위화도 회군을 하였던 것이고 그 근거로든 4불가론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번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1. 당시 고려의 상황

당시 고려는 오랜 기간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있으면서 왕들조차 고려 국왕이라는 지위보다 원나라 부마국의 지위를 더 높게 생각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명나라라는 신흥세력이 크기 시작하자 조정에서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하는 친명파와 최영을 중심으로 하는 친원파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이 둘은 모두 무인으로 고려의 왜구 침탈을 막아낸 영웅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국왕이었던 우왕이 최영을 무척이나 신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 친명과 친원

이렇게 친명과 친원파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던 와중에 명나라는 고려에 과도한 세금을 요구함과 동시에 철령 지역은 자신들의 땅이니 회수하겠다고 통보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최영은 요동정벌을 감행하자면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는데. 당시 원나라는 몽고 쪽에 조금 더 치중을 한 형국이었기 때문에 요동이나 만주지역은 군사적으로 점령을 누가 먼저 하느냐의 싸움이었다고 하네요.

 

3. 요동정벌

그리고 우왕은 이를 받아들여 당시 최고의 장군인 이성계에게 군사 5만을 주면서 요동을 정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계속 거절하던 그도 어쩔 수 없이 정벌을 떠나야 했다고 합니다. 압록강을 건너려고 하였지만 비가 와서 위화도에서 잠시 쉬던 중 이성계는 같이 참전을 한 조수민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다시 고려로 5만의 군대를 이끌고 되돌아갔지요! 당시 이 사건은 왕명을 거부한 것으로 명백한 반란이었습니다.

 

4. 4불가론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우왕에게 4불가론을 보내는데요. 그 내용을 알려드릴게요! ​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 둘째. 여름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셋째, 모든 군사가 싸우러 나간 틈을 타서 왜구가 공격해 올 것이다. 넷째, 지금은 덥고 비가 오는 때라서 활을 붙인 풀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병에 걸려 역병이 돌 것이다. ​ 이와 같은 4불가론을 주장하면서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하여 고려의 개성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최영과 전투 끝에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지요.

 

5. 두문불출의 뜻

그리고 조선을 건국하지만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킨 충신들이 있는데요. 바로 두문불출의 유래랍니다. 당시 조선을 세우고 고려의 유신 72인이 부조한이라는 고개에서 조복을 벗어던지고 새 나라에 출세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방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자 이들을 나오게 하고자 방에 불을 질렀는데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은 당시 위화도 회군이 가장 큰 요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장한 4불가론은 아직도 정말 많이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데요! 위화도 회군과 4불가론 꼭 기억하세요!

댓글